23년에 지방직 9급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임용 대기 중입니다.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저는 편의점 카운터 안쪽에 서 있었습니다. 삼각김밥 유통기한을 라벨건으로 찍어 내리던 중이었고, 휴대폰이 진동했고, 발표 사이트가 떴고, 제 수험번호 옆에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라벨건을 내려놓고 손님이 들어올 때까지 5분쯤 카운터에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이 글은 합격 수기가 아닙니다. 과목별 공부법도 없고, 인강 커리큘럼도 없습니다. 그냥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며 시험을 준비했고, 붙었고, 그런데 막상 붙고 나니 임용이 안 되는 이상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저처럼 합격해놓고도 출근을 못 하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저는 합격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편의점 카운터 뒤에서 인강을 들었습니다
저는 4년제를 나오긴 했는데 전공으로 갈 자리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부모님 형편이 학원비를 대줄 정도는 아니었고, 노량진 기숙반 같은 건 애초에 제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야간 타임을 잡았습니다.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시급은 그때 기준으로 딱 최저였고, 야간 수당이 붙어서 그나마 버틸 만했습니다.
야간 편의점은 손님이 몰리는 시간과 텅 비는 시간이 칼같이 갈립니다. 새벽 1시 넘어가면 한두 시간씩 손님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무선 이어폰 한쪽만 꽂고 인강을 돌렸습니다. 한국사 강의를 0.5배속으로 다시 들으면서, 문이 열리면 잠깐 멈추고 담배 한 갑 계산하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진열 정리하면서 영단어를 중얼거렸고, 폐기 도시락을 데우면서 행정법 판례 키워드를 떠올렸습니다.
남들은 독서실에서 8시간 집중한다는데, 저는 그게 부러웠습니다. 제 공부 시간은 손님이 안 오는 틈을 긁어모은 자투리였습니다. 그래도 그 자투리가 하루에 서너 시간은 됐습니다. 카운터 밑에 기본서를 깔아두고, 손님 응대 사이사이에 한 페이지씩 넘긴 게 1년 반 동안 쌓였습니다.
야간 근무가 끝나는 아침 8시에 교대 알바가 오면, 저는 편의점 앞 파라솔 의자에 잠깐 앉아 캔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가서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면 오후였습니다. 그 오후 시간에 동네 도서관 열람실에 가서 본격적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하루는 야간 편의점에서 인강을 듣고, 잠깐 자고, 오후에 도서관에서 문제를 푸는 식으로 돌아갔습니다. 낮밤이 뒤집힌 채로 1년 반을 살았습니다. 햇빛을 제대로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그 생활이 저한테는 학원비를 아끼면서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겨울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야간 편의점은 자동문이 손님 들어올 때마다 열리는데, 새벽 찬 공기가 그대로 들어옵니다. 핫팩을 허리에 붙이고 카운터에 서서 기출문제집을 넘기던 그 새벽들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손이 곱아서 펜이 잘 안 잡힐 때는 온장고에서 따뜻한 음료를 꺼내 손에 쥐고 녹였습니다.
명절에 15만 원을 봉투에 넣어주던 사장님
야간 알바를 오래 하면서 가장 고마웠던 사람은 점주 사장님이었습니다. 50대 후반의 무뚝뚝한 분이었는데, 제가 공부한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 새벽에 손님 없을 때 책 보는 걸 모른 척 해주셨습니다. CCTV로 다 보였을 텐데도 한 번도 뭐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설날하고 추석에는 흰 봉투에 15만 원씩 넣어서 손에 쥐여주셨습니다. 명절이라고, 집에 갈 차비라도 하라고. 처음 받았을 때 제가 한사코 안 받겠다고 하니까 사장님이 그러셨습니다. 나도 젊을 때 남의 가게 카운터 봤다고, 그때 누가 이런 거 한 번 해줬으면 평생 기억했을 거라고. 그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봉투를 기억합니다.
폐기 직전 도시락이나 김밥을 챙겨주신 것도 사장님이었습니다. 야간에 끼니를 챙겨 먹기가 어려운데, 사장님은 폐기 처리 전에 따로 빼두셨다가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한 공부였습니다. 합격하고 나서 제일 먼저 인사하러 간 곳도 그 편의점이었습니다.
한번은 새벽에 술 취한 손님이 들어와서 진열대 물건을 바닥에 쏟고 행패를 부린 적이 있습니다. 무서워서 카운터 뒤에 서 있는데, 마침 그날 사장님이 재고 정리하러 새벽에 들르셨다가 그 손님을 돌려보내 주셨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사장님은 비상벨 위치를 다시 알려주시고, 무슨 일 있으면 시간 상관없이 전화하라고 본인 번호를 카운터에 적어두셨습니다. 야간 알바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안전망 하나가 있고 없고는 정말 큰 차이입니다. 저는 그 번호 덕분에 남은 야간 근무를 마음 놓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합격 통보 다음 날, 다시 야간 근무를 나갔습니다
드라마였다면 합격하자마자 알바를 그만두고 멋지게 떠났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합격 통보를 받은 다음 날에도 평소처럼 야간 근무를 나갔습니다. 임용일이 정해진 게 아니었으니까요. 당장 그만두면 그 사이 생활비가 없었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나면 곧바로 출근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합격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신규 임용 후보자 명부라는 게 있고, 저는 거기 이름이 올라간 상태로 발령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습니다. 합격증은 손에 있는데 출근할 부서는 없는, 그런 애매한 신분으로 몇 달을 보내게 됐습니다.
주변에서는 합격했으니 이제 다 됐다고, 고생 끝났다고 축하해줬습니다. 저는 그 축하를 받으면서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발령이 안 나면 월급도 없습니다. 합격자에게는 통장에 찍히는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합격하고도 편의점 야간 알바를 몇 달 더 했습니다. 합격생이 폐기 도시락을 데우고 있는 풍경. 그게 제 현실이었습니다.
합격증을 출력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옆에서 다음 날 야간 근무 유니폼을 챙기던 밤이 기억납니다. 합격증과 알바 유니폼이 한 책상 위에 같이 놓여 있는 게 좀 우스웠습니다. 부모님은 합격했으니 이제 알바 그만하고 좀 쉬라고 하셨지만, 발령이 언제 날지 모르는데 손 놓고 쉴 수가 없었습니다. 쉬는 동안에도 월세는 나가고 휴대폰 요금은 빠져나갑니다. 합격이라는 결과는 분명히 손에 쥐었는데, 그 결과가 당장 통장으로는 바뀌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임용 대기, 왜 바로 출근을 못 하는 걸까
이걸 겪으면서 제도를 좀 찾아봤습니다. 제가 이해한 선에서만 적겠습니다. 지방직 공무원은 최종 합격을 하면 임용 후보자 명부에 등재됩니다. 그런데 이 명부에 올랐다고 해서 곧바로 발령이 나는 게 아닙니다. 각 기관에 실제로 자리가 비어야, 즉 결원이 생겨야 그 자리에 명부 순서대로 발령을 내는 구조입니다.
결원은 정해진 날짜에 한꺼번에 생기지 않습니다. 기존에 근무하던 분이 퇴직하거나, 휴직에 들어가거나,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야 그 빈자리가 만들어집니다. 그 빈자리가 생기는 시점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보니, 같은 회차에 합격한 사람들도 누구는 합격하자마자 발령이 나고 누구는 한참을 기다립니다. 명부 유효 기간은 보통 몇 년 단위로 잡혀 있어서, 그 기간 안에 자리가 나면 순차적으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그해 결원이 천천히 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합격하고도 출근까지 꽤 긴 시간을 비어 있는 상태로 보냈습니다. 구체적인 대기 기간은 지역과 직렬, 그해 결원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누가 물어도 정확히 답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두 달 만에, 어떤 사람은 반년이 훌쩍 넘게 기다린다는 게 제가 주변을 보며 체감한 전부입니다. 정확한 시점은 임용권을 가진 기관에 직접 문의하는 게 맞습니다. 저도 한참을 망설이다 시청 인사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제 명부 순번을 물어봤습니다.
처음 인사 부서에 전화를 걸 때는 손이 좀 떨렸습니다. 합격자가 발령을 재촉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혹시 미운털이 박힐까 봐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받은 담당자분은 아주 익숙한 듯 안내해 주셨습니다. 같은 질문을 하는 합격자가 많다는 뜻이었습니다. 제 순번이 몇 번이고, 앞으로 결원이 어떻게 날 가능성이 있는지를 큰 틀에서만 설명해 주셨습니다. 정확히 며칠에 발령이 난다는 약속은 당연히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과, 내가 명부에서 대략 어디쯤 서 있는지를 아는 것은 마음의 무게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전화 한 통 이후로 저는 발령 카페 글을 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합격했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던 시간
솔직히 이 임용 대기 기간이 합격 직전보다 더 외로웠습니다. 수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을 잘 안 만나게 됩니다. 저도 편의점하고 집만 오가는 생활을 몇 년 하면서 연락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합격하면 그 단절이 한 번에 풀릴 줄 알았는데, 막상 합격하고도 출근을 못 하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수험생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닌 시간. 누가 뭐 하냐고 물으면 합격은 했는데 발령을 기다린다고 답해야 하는데, 그 말을 할 때마다 변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합격 자체를 의심받는 건 아닌데도, 출근하는 직장이 없으니 제 자신이 자꾸 작아졌습니다. 도와달라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습니다. 제도가 원래 그렇게 돌아간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그 줄 끝에 서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한 게 사실이었습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더 곤란했습니다. 합격했다는 소문은 났는데, 어느 부서에 다니냐는 질문에는 아직 발령을 기다린다고 답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합격한 거 맞냐는 표정으로 한 번 더 묻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명부 등재니 결원이니 하는 설명을 늘어놓다가, 끝에는 곧 발령 날 거라고 짧게 끊는 법을 익혔습니다. 길게 설명할수록 변명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수험 생활 내내 사람을 안 만나서 가뜩이나 말수가 줄어 있었는데, 이 시기에는 사람 만나는 자리 자체가 더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그냥 편의점 야간으로 버텼습니다. 발령이 늦어지는 건 제 잘못이 아니니까, 자책하지 말자고 매일 카운터에서 되뇌었습니다. 새벽에 손님 없는 시간이면 이제 인강 대신 발령 관련 카페 글을 읽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명부 순번을 공유하고, 언제쯤 연락이 왔다더라 하는 정보를 나누는 글들이었습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고 조금 안심했습니다.
명절이 한 번 더 지나갔습니다. 그해 설에도 사장님은 흰 봉투를 내미셨습니다. 합격한 거 아는데 왜 또 주시냐고 하니까, 발령 날 때까지는 너도 여기 직원이라고 하셨습니다. 합격생 신분으로 또 명절 봉투를 받는 게 민망하면서도, 그 봉투가 그달 공과금이 됐습니다. 저는 그 돈으로 발령 통지서를 기다리는 달을 또 한 번 넘겼습니다.
가끔은 시청 홈페이지의 임용 후보자 안내 게시판을 새로고침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새 공지가 올라왔나, 추가 발령 안내가 떴나, 의미 없는 줄 알면서도 손이 자꾸 갔습니다. 그러다 아무 변화가 없으면 다시 편의점 출근 준비를 했습니다. 그 반복이 몇 달이었습니다.
임용 대기 중인 분들께 제 경험을 적습니다
저처럼 합격해놓고 발령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면, 제가 겪으며 알게 된 몇 가지를 적어두겠습니다. 정보가 아니라 그냥 먼저 겪은 사람의 경험담입니다.
첫째, 합격하자마자 하던 일을 무조건 그만두지 마세요. 저는 합격 후에도 편의점 알바를 몇 달 더 했고, 그 덕에 발령 대기 기간의 생활비를 메웠습니다. 임용 전까지는 월급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발령 시점이 불확실하니 소득 공백을 미리 계산해두는 게 좋습니다.
둘째, 제 순번이 궁금하면 추측하지 말고 임용권자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저는 시청 인사 부서에 전화해서 명부 순번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카페에 떠도는 남의 사례는 지역과 직렬이 다르면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셋째, 그 시간 동안 자기를 너무 깎아내리지 마세요. 발령이 늦는 건 결원이 늦게 나기 때문이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그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합격증은 이미 손에 있고, 자리는 차례가 되면 옵니다.
넷째, 임용 전에 준비해 두면 좋은 서류를 미리 확인해 두세요. 저는 발령 연락을 받고 나서야 제출 서류를 챙기느라 한 번 더 정신이 없었습니다. 신원진술서, 각종 증명서, 신규자 교육 일정 같은 것들이 발령 직후에 빠르게 진행됩니다. 대기 기간에 멍하니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미리 알아 두면 막상 연락이 왔을 때 허둥대지 않습니다. 저는 미리 챙겨두지 못해서 발령 통지를 받고 며칠을 또 서류 발급하러 뛰어다녔습니다.
저는 얼마 전 시청에서 발령 안내 연락을 받았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인사 담당이라며 첫 출근 날짜를 불러주셨습니다. 저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다 말고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통화를 끊고 나서 손님 계산을 마저 끝내고, 영수증을 건네고 나서야 방금 그게 발령 전화였다는 게 정리됐습니다. 첫 출근 날짜를 받아 적으면서, 야간 편의점에서 라벨건을 내려놓던 그날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출근 전날 저는 편의점 사장님께 이제 진짜 그만둔다고 인사를 드리러 갔고, 사장님은 또 흰 봉투를 꺼내려다 제가 말려서 대신 캔커피 두 개를 쥐여주셨습니다. 그 캔커피를 들고 나오면서 저는 이 긴 대기 시간이 드디어 끝났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사장님은 새 알바를 구할 때까지만 가끔 대타 좀 서달라고 하셨고, 저는 첫 월급 받기 전까지 주말에 몇 번 더 그 카운터에 섰습니다.
비슷한 자리에서 기다리는 분이 이 글을 본다면, 그 줄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줄어듭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공무원 준비와 합격 이후의 현실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27살 늦깎이 일반행정 9급 합격기와 늦깎이로 공무원이 되면 겪는 현실도 함께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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